기찬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주영에게 사랑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 그는 주영이 없이는 아무 일도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찬은 서글퍼졌다. 자신의 이런 사실을 안다면? 주영이 과연 어떻게 나올까?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을 비웃으며 야멸 차게 떠나버리진 않을까? 아니면 그가 부담스러워 떠나거나. 아니면 동정해서 같이 있어 주겠다고...... 젠장! 그 어떤 것도 그는 싫었다. 주영이 자신을 사랑까지는 아니지만 좋아해서 곁에 있어 주었으면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큰 기대이자 바람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 그런 죄를 저지르고도 그토록 뻔뻔했던 자신이 그런 것을 바란다는 것이, 꿈에라도 그것을 바란다는 것은 너무나도 허망한 꿈 같은 소원일 뿐인 것이다.
주영은 가엾다는 듯 그를 쳐다보며 비웃는 어조로 말했다.
'내가 왜 그동안 당신과 같이 지낸 줄 알아? 난 서서히 당신이 나 없으면 안 되게 만들었지. 이제 그 결실을 이루었군. 흥, 나의 인생과 내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당신을 내가 용서할 줄 알았어? 그렇게 쉽게 그런 것을 잊을 줄 알았냐고? 천만에, 난 오늘 같은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어! 당신이 나에게 매달릴 날만을 기다렸지. 사람이 아프면 약해진다고 했던가? 흠,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는걸. 난 이제 홀가분하게 당신을 떠날 수 있겠어. 자! 당신도 당해 봐. 사랑하는 것을 잃어버리는 그 고통을 말야. 거절당하는 그 고통을 말야.'
'아직도 내가 느꼈던 고통이 모자랐다는 말이야! 차라리 그냥 내가 병원에 있을 때 떠나지, 왜? 왜 날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는 거지? 왜 더한 고통을 주는 거냐고!'
기찬의 피를 토하는 것 같은 절규에 주영이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얄미울 정도로 부드럽게 말했다.
'그때 그렇게 당신이란 남자를 버리고 떠나기엔 그 고통이 너무 적잖아. 당신은 고작 한쪽 발만을 잃었을 뿐이고, 난 내 아이의 목숨을 잃었어. 겨우 그 정도로 내가 물러설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땐 당신이 내가 떠나 주길 바랐잖아. 상처를 조금이라도 덜 받으려고 말야.'
저자소개
이현수(저자): - 1972년 12월 28일 生.
- 2000년 12월부터 온라인 소설 연재 시작.
- <그녀의 향기 속으로> <누구도 사랑을> <사랑 그 슬픈 전설> <그 여자의 남자 친구> <비가 (悲歌)> <복수는 달콤해>등을 집필했으며, <추락의 끝에서> 연재 중.
- 현재 '로월'에서 활동 중.
작가의말
정말 뜨거운 감자처럼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소설 초반 여자 주인공인 주영의 그 나약함과 남자 주인공인 기찬의 그 잔인할 정도의 뻔뻔스러운 이기심으로 많은 분들이 질타를 하셨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히 바람났던 남편을 용서하고 받아준다는 지고지순한 여자의 이야기를 쓴 것이 결코 아닙니다. 주영은 자신이 너무나도 완벽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좋은 부모 밑에서 남 부러울 것 없이 자라 남들이 선망하는 집안의 남자에게 시집와 아이도 낳고 순종하며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새장이었음을,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것들이 거짓이고, 허상임을 알았을 때, 너무나 큰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처음엔 결코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삶이었지만, 자신의 노력과 힘으로 마침내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신을 찾습니다. 결국 사랑과 행복은 자신의 힘으로써 노력하고 성취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기찬은 날 때부터 집안의 교육의 영향으로 항상 최고라는 생각과 지나친 자신감과 우월감으로 자신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남을 사랑하기는커녕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했던 사람이었지요. 그러다 자신의 일탈 행동으로 인해 뼈아픈 경험을 한 후 그는 더욱더 냉소적이고 차가운 사람이 되어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주영의 변화된 모습을 우연히 알게 되면서 그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것이 단순한 소유욕이라 생각했었지만 그는 나중에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늦은 깨달음이었습니다.
사랑이 찾아왔을 때, 과연 그것이 사랑인지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주영과 기찬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끝으로 늘 저에게 글 쓰는 기쁨을 주시는 로월 홈지기님을 비롯해 로월 공주님과 왕비님들, 부족한 제 글을 휼륭하게 교정 보아 주신 아이디처럼 향기로운 라일락 김성희님과 신비로운 느낌의 아레 조경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목차
프롤로그 - 사고
1 - 오만한 그들
2 - 이기적인 사랑
3 - 밝혀진 추악한 진실
4 - 무너진 새장
5 - 새장 밖으로
6 - 주영이라는 여자
7 - 우리 한번 사귀어 볼까요?
8 - 오만이 가져온 형벌
9 - 재 회
10 - 소국 한 다발
11 - 달라진 그녀
12 - 서글픈 집착
13 - 사랑이란 잔인한 이름
14 - 엇갈린 시선
15 - 촌철살인(寸鐵殺人)
16 - 기찬이라는 남자
17 - 이규라는 남자
18 - 홀로서기
19 - 너무 늦은 사과
20 - 사랑은 과연 무엇일까?
21 - 새로운 시작
22 - 친구라는 이름
23 - 절망 속에서
24 - 사랑의 깨달음
25 - 사랑한다면
에필로그 - 그들에게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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