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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소개> - 헤럴드경제 윤정현 기자
좌절, 실패에서 배우는 처세술
- 유비는 분노, 마속은 자만으로 몰락 …… 소설 아닌 에세이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과 친구가 되지 말고,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싸우지 마라.”이 속언은 삼국지가 인간세계의 축소판임을 암시하고 있다. 삼국지에서는 영웅과 간웅들의 신의와 지혜와 음모와 질시와 암투 등 복잡하게 뒤엉킨 인간관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오죽하면‘삼국지를 10번 읽으면 물 위를 걸어다닌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그러나 빼곡한 글자를 눈으로만 훒으면 1000번을 읽고, 1만 번을 반복해도 물 위는커녕 한 길 물 속도 헤아리기 어렵다. 무작정 의무감으로 삼국지에 코를 박은 사람이라면 이번엔 이 책,‘삼국지, 인간을 말하다’(뿌리깊은나무)에 귀를 기울여볼 만하다.
중국 문화학자인 저자 위쉐빈은 영웅의 좌절과 호걸의 몰락에 주목한다. 실수는 더 많은 걸 가르치고, 실패를 통해 발전이 가능해서다.
나라를 세워 천하를 삼분한 도원결의의 주인공 유비, 관우, 장비가 먼저 눈에 띈다.
인정 많고 포용력이 넓다는 유비는 정작 사사로운 분노로 큰일을 간과했고, 충성심이 강하고 병법에 능통한 관우는 자긍심이 지나쳤으며, 의리 있고 무예가 뛰어난 장비는 급한 성격에 덕이 없다.
반면 유비가 삼고초려 끝에 얻은 지략가 제갈량에 대해선“진력을 너무 쏟아 영웅의 눈물이 수건을 적시다”고 표현한 뒤‘일에 미친 사람’으로 저자는 결론을 내린다.
토해낸 말 속에서 그 인물들의 속성을 파악하기도 한다.‘읍참마속’이 그 예이다. 마속은 제갈량이 주의를 주면,“제가 어려서부터 병서를 숙독해 병법을 꽤 알고 있습니다”고 대꾸했고, 사마의를 쉽게 보아선 안 된다는 당부에 대해선“사마의와 장합이 아니라 조예가 직접 온다 해도 무엇이 두렵겠습니까?”고 답했다. 마속은 어떤 상황이든 호언장담으로 일관했다.
저자는‘큰소리 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남에게 잠시 신임을 얻을 순 있지만, 그 폐해가 상당히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읽는 데 감칠맛을 돋구는 것은 저자가 공자, 맹자의 말을 빌리고, 손자병법과 채근담까지 버무려 호걸들의 됨됨이를 잡아내는 솜씨다.
예컨대 제갈량의 경우 일과 놀이의 조화를 간파하지 못한 안타까움을‘소요유(消遙遊)’를 가져다 에둘러 말하고, 시기심 많고 옹졸한 주유는 논어에서‘사람이 신의가 없으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는 말로 꾸짖고, 여자 때문에 동탁을 배신하고, 부하를 함부로 대하다 정작 위기가 닥치자 목숨을 애걸하는 여포에 대해선 ‘신의가 없고 행동에 일관성이 없는 자는 소인’이란 순자의 말을 인용, 비판한다.
‘삼국지, 인간을 말하다’는 삼국지가 단순한 소설에 머물지 않고 처세술, 통치비법서 등 전술서로 읽히는 배경을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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