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컨의 유토피아는 흔히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와 비교된다. 그러나 두 사람이 추구한 이상국가의 모습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우선, 시대적 배경이 다르다. 모어가 활동하던 헨리 8세의 집권기인 16세기는 비관주의와 복고주의가 팽배해 있었던 시기이다. 반면에 베이컨이 활동하던 17세기는 영국 절대 왕정의 전성기이며 문화의 황금시대였다. 이런 시대상을 반영하는 이 책에는 인간의 조건과 운명에 대한 낙관주의와 미래지향주의가 충만하다. 또 지식과 힘, 진리와 효용을 일치시키려는 욕구충족적 물질주의가 강하게 표출되어 있다.
따라서 모어와 달리 베이컨은 사회정의나 개혁보다는 인간이 겪는 현재의 고통과 궁핍을 감소시키는 데 관심을 집중한다. 즉 과학과 지식의 진보만이 인간의 생활조건을 개선하고 인류의 복지를 실현하여 궁극적으로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의 간단한 내용은 이렇다. 페루를 출발해 중국과 일본을 향해 항해하던 배가 표류하다 어느 육지에 이르게 된다. 벤살렘 왕국이라 불리는 그곳이 바로 베이컨이 그리는 유토피아의 모습이다. 이 왕국을 통해 베이컨은 두 가지를 언급한다. 하나는 그리스도교를 바탕으로 한 가부장제의 추구이며, 다른 하나는 과학적 유토피아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다. 이 유토피아의 가능성은 무한하며 의심의 여지가 없는데, 그 핵심에 '솔로몬 학술원'이 있기 때문이다.
솔로몬 학술원의 설립목적은 사물의 숨겨진 원인과 작용을 탐구하는 데 있으며, 그럼으로써 인간활동의 영역을 넓히며 인간의 목적에 맞게 사물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 학술원은 이 작품에서 핵심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베이컨의 전체 철학 체계를 관통한다. 씨앗 없이 배양토의 혼합만으로 자라는 식물과 그 열매들,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새로 태어난 생물종, 자연현상까지 적절히 조절하는 기계들. 바로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가 꿈꾼 유토피아는 현대에 와서 절반의 성공만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런 문명의 대가로 더 많은 희생을 치루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소개
프란시스 베이컨(저자): 1561년 영국 런던에서 대법관이던 니콜라스 베이컨의 막내 아들로 태어난 저자는 궁정가이자 정치가이며 법률가였고, 인본주의자이자 문필가로서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엘리자베스 여왕 치하에서 국회의원이 되었고, 제임스 1세 때에 사법장관, 검찰총장 등 요직을 거쳐 1618년에는 대법관에 올랐다. 날로 권세가 높아가던 중 뇌물수수혐의로 의회의 탄핵을 받아 관직과 지위를 박탈당하였다. 그 뒤 조용한 교외 저택에 칩거하면서 연구와 저술 활동에 전념하였다. 이때에「헨리 7세의 치세사」「자연사 및 실험사」「삶과 죽음의 역사」등 그의 주요 저서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김종갑(번역자): 미국 루지애나 주립대학교 영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건국대학교 영어영문학교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워즈워스」「서술이론과 문학비평」(공저)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니체: 문학으로서의 삶」「20세기 프랑스 철학」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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