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석은 자신을 기다리는 두 여자의 지루함이 걱정되는지 파도 부서지는 소리만 요란하게 들려오는 뿌연 폭풍 속으로 말을 잘 듣지 않는 다리를 힘겹게 옮겨나가기 시작했다. 바닷물이 밀려들어와 그의 발목을 적셨지만 그에겐 아무럽 느낌도 없었다. 갑자기 불어닥친 강풍에 그가 중심을 잃고 그만 뒤로 벌렁 뻗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내 용수철 튀듯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자신의 손에서 떨어져 나간 작은 나무상자를 찾아 주위를 더듬기 시작했다.
저 멀리 폭풍 속에서 두 여자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잠깐만…….
나무상자를 찾아 손에 쥐고 천천히 몸을 일으킨 후 광석은 다시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겨나갔다. 이제 바닷물은 그의 무릎까지 올라와 있었다.
아네모네 향기가 사방에서 풍겨오기 시작했다. 거센 폭풍이 몰아치는 한겨울 바닷가에서 아네모네의 향기가. 사실 광석은 아네모네 향기를 몰랐다. 아네모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분명히 그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입을 모을지 모르는 세상의 모든 논리도 지금 이 순간 광석에게만큼은 먹혀들지 않고 있었다.
-프롤로그 중-
최필원 장편소설. 죽음의 문턱에 선 그에게 다시 삶의 희망을 심어주는 여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항상 밝고 순수한 그녀를 위해 헌신하는 남자. 그리고…… 어느날 나타나 잔잔한 두 사람의 가슴에 돌을 던지는 여자. 비운의 세 사람이 한 데 얽혀 엮어가는 은은한 아네모네 빛 로맨스.
저자소개
최필원(저자):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했고, 장편소설『베니스 블루』로 한국 인터넷 문학상에 당선, 등단했다. 전문 번역가와 소설가로 활동중이며, 옮긴 책으로는 『파이트 클럽』『질식』『서바이버』『엘렌 림바우어의 일기』등 다수가 있고, 지은 책으로는 『베니스 블루』『비의 교향곡 NO.9』등이 있다. 현재 꾸준한 번역 작업과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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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폭풍속으로
만남
새로 맞는 아침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
바다가 보이는 모텔
부메랑
9월의 신부
가을 레퀴엠
응징자
세상을 얻은 대가
고백
재회
새벽을 열고 떠난 사람
바다에 지다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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