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그걸 가르쳐 준 사람이 바로 아저씨의 첫 번째 아내, <이밥 여사>였다. 그 중신은 어른들이 선 게 아니라 동네 형들이 선 것이었다. 아니, 중신을 서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동네에 웬 반편이 같은 떠돌이 여자 하나가 들어오자 동네 형들이 장난반, 진담반으로 그 여자를 세일이 아저씨 집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던 다음날 세일이 아저씨와 함께 큰집이랍시고 올라와 할아버지에게 절까지 드리고 내려간 그 반편이 여자는 <이밥 여사>라는 별명만 남기고 닷새도 못돼 다시 마을을 떠나고 말았다. 어떻게 떠났는지는 가는 모습을 보지 못해 알 수 없지만, 떠나며 남긴 이별사 한마디만은 당시 동네 사람들 사이에 무슨 명언처럼 퍼졌던 터라 그대로 옮겨 적어보기로 하겠다.
'밭 팔아 논 살 때는 이밥 먹자는 뜻이구, 여편이 사나한테 엎어질 땐 윗배 아랫배 굶지 말자는 뜻인데 이거야 어디 윗배 채울 낮양식이 흔하우, 그렇다고 아랫배 채울 밤양식이 제대로 갖춰졌수?'
그러니까 그 반편이 여자도 어디서 그런 쪽으로 주워들은 고약한 풍월 한 가지는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 되겠다.
그리고 두 번째 여자 역시 동네로 흘러든 거지중의 상거지 같은 여자를 동네 아주머니들이 세일이 아저씨 집으로 밀어넣어준 것인데, 그 여자 역시 우리집에 올라와 목욕 한 번만 하고 삼일 만에 세일이 아저씨한테 오히려 소박을 맞고 쫓겨났다. 목욕은 행색이 워낙 더러워 오던 다음날 저녁 어머니가 일부러 불러올려 씻긴 것인데, 그때 나는 얼결에 언뜻 여자의 등판을 보았다. 학교에서 막 돌아온 다음 부엌에서 철벅, 철벅하는 물소리가 들려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었다가 어머니가 몸을 씻기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을 호롱불 아래 흐릿하게 보았던 것이다.
'얼른 문 닫지 못하나?'
어머니는 내가 벌써 문을 닫았는데도 이쪽으로 대고 꾸짖듯 말했다. 그 말에 여자는 뭐가 그리 좋고 재미 있는지 큰소리로 히히히, 하고 웃었다.
저자소개
이순원(저자):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강원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8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가 당선되고, 1988년 단편 「낮달」로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소설집 「그 여름의 꽃게」 「말을 찾아서」 「은비령」등이 있고, 장편소설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수색 그 물빛 무늬」 「아들과 함께 걷는 길」 「19세」 「램프 속의 여자」등이 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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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도근이 아저씨의 아들
2. 서녘마루
3. 수모(水母) 이세일
4. 노새의 아내
5. 그는 누구를 기다렸을까
6. 수모(水母)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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